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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두 마리 값인 딱 35달러(약 4만 원)로 수학 공식 세계 기록 10개를 갈아치운 개인 AI 에이전트가 나타났다. r/openclaw에 올라온 이 황당하면서도 경이로운 후기를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에이전트한테 “내일 아침 알람 맞춰줘”, “슬랙 메시지 요약해줘” 따위나 시키며 놀고 있을 때, 누군가는 방구석에서 학계 랭킹을 뒤흔들고 있었다(반성하자…).

무슨 일이 있었나

수학계에 ‘정사각형 안에 원 채우기(Circle packing in squares)’라는 유서 깊은 조합 최적화 문제가 있다. 이름만 들으면 초등학생 퍼즐 같지만,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들이 매달려온 난제 중의 난제다. 이 분야의 성지 같은 공식 기록 웹사이트가 바로 ‘Packomania’인데, 2011년부터 한 연구자가 엄격하게 세계 기록을 관리해오고 있다. 올해 초에는 구글 딥마인드가 자기네 ‘AlphaEvolve’를 투입해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바로 그 Packomania 공식 기록판에 구글 딥마인드의 AlphaEvolve 바로 옆자리로 한 개인 개발자의 에이전트 이름이 나란히 박혔다.

글쓴이는 원래 OpenClaw로 할 일 관리나 리마인더를 돌리던 평범한(?) 사용자였다(전직 포커 플레이어 출신 기업 애널리스트라고 한다). 그러다 문득 “이 녀석한테 밤새 수학 문제나 한번 던져볼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에이전트에게 쥐어준 루프는 단순 무식했다.

  1. 에이전트가 원 채우기 알고리즘(Solver) 코드를 작성한다.
  2. Packomania 사이트의 기존 세계 기록과 점수를 비교한다.
  3. 기존 기록을 깨면, 알고리즘을 개선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시 코딩(Self-rewrite)한다.
  4. 유의미한 신기록이 나오면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이 에이전트의 이름은 ‘MoltFire’. 하룻밤 동안 방구석에서 자율 반복 실험(Loop)을 묵묵히 돌린 결과, 기존에 등재되어 있던 세계 신기록을 무려 10개나 갈아치워 버렸다. 하룻밤 동안 날아간 Claude API 비용은 고작 35달러. 우리 돈으로 4만 원 남짓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Packomania 사이트의 논문 참고문헌 목록에 실제로 이런 문구가 박혔다.

[14] Wes Sander, MoltFire, discovery-loop and private communication, September 2026.

수십 년간 이 문제를 붙잡고 연구해 온 석학들과 구글의 슈퍼컴퓨터 군단 사이에, 로컬 폴더 구석에서 4만 원어치 토큰을 먹고 자란 개인 에이전트가 당당히 ‘공동 저자’로 등재된 것이다(낭만 그 자체다).

왜 이게 가능했나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순한 운빨이었을까? 뜯어보면 세 가지 절묘한 엔지니어링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첫째, 문제 자체가 ‘기계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였다.
Circle packing 문제는 정답 여부와 점수(밀도)가 수학적으로 즉시 계산된다. “이 코드가 좋은 코드인가?” 같은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기존 최고 기록과의 명확한 대소 비교다. 평가 기준이 0.0001초 만에 떨어지니, 에이전트가 “스스로를 다시 짜며 개선하는 루프(Self-improvement)”를 돌려도 환각(Hallucination)에 빠져 헛소리할 틈이 없다.

둘째, 압도적으로 저렴한 실험 비용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AlphaEvolve를 돌릴 때 태웠을 수억 원대 컴퓨팅 파워와 비교하면, 35달러는 사실상 0원에 수렴한다. 실패해도 전혀 타격이 없는 비용이다 보니, 에이전트가 수천 번의 삽질과 엉뚱한 알고리즘을 시도하며 자율 탐색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개발에서도 비용이 싸야 과감한 리팩토링이 가능한 법이다).

셋째, 발상의 전환이다.
레딧 댓글 중 가장 와닿았던 한마디가 있다. “난 OpenClaw를 고작 마케팅 뉴스레터 긁어오는 크론잡으로만 썼는데, 여기에 수학 난제를 던져볼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AI 에이전트는 기껏해야 귀찮은 잡일 대신해 주는 비서다. 하지만 목표를 명확히 세팅하고 자기 수정 권한을 쥐어주는 순간, 밤새 지치지 않고 가설을 검증하는 천재 연구 보조원으로 탈바꿈한다. 도구의 한계가 아니라 사용자 상상력의 한계였던 셈이다.

주목할 지점

이 사건의 진짜 충격은 수학 기록 갱신 그 자체가 아니다. ‘자율 탐색 루프(Autonomous Discovery Loop)’라는 연구 패러다임이 이제 거대 빅테크 연구소의 독점물이 아니라, 개인 개발자의 방구석 터미널에서도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1.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목표(Scoreboard)
  2. 부담 없이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저렴한 토큰 비용
  3. 스스로 코드를 수정하고 재실행할 수 있는 권한(Self-correction)

이 세 가지 기둥만 세워주면, 개인 에이전트도 언제든 학술적 성과를 뽑아낼 수 있는 연구 엔진이 된다.

물론 “수학 최적화 퍼즐이니까 가능했지, 복잡한 현실 과학에선 안 통한다”는 회의론도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레딧에 남긴 다음 한 줄이 내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이제 몸 풀었으니, 실제로 인류에게 유용한 과학 문제를 던져볼까 한다.”
이건 끝이 아니라, 개인 과학(Personal Science) 시대의 오프닝 벨이다.

정리

스케줄이나 정리하던 개인 에이전트에게 수학 문제를 던져두고 잤더니, 자고 일어난 사이에 세계 기록 보유자가 되어 있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모든 게 오픈소스로 공개된 현실이다(discovery-loop 저장소에 코드가 다 올라와 있다).

오늘 밤 퇴근하고 나면 내 에이전트한테 뭘 시켜야 할까. 의미 없는 슬랙 봇 테스트는 그만두고, 깃허브 이슈를 통째로 해결하게 시키든가 오래 묵혀둔 알고리즘 난제를 던져봐야겠다. 35달러로 세계 기록을 깰 수 있는 세상에서,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건 도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